투자 업계에서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이상한 장면을 보게 된다.
통장에 돈이 있는데 불안해하는 사람들이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돈이 없어서 불안한 건 이해할 수 있다.
생활비가 부족하면 불안하다.
대출이 많아도 불안하다.
그런데 통장에 돈이 있는데도 불안해한다.
심지어 몇 년 동안 모은 돈이 그대로 있는데도 불안해한다.
그 불안의 이유는 대부분 비슷했다.
“이 돈을 그냥 두고 있어도 되는 걸까?”
“지금 투자해야 하는 거 아닐까?”
“남들은 다 돈 버는 것 같은데 나만 가만히 있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돈이 생겼는데 안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급해진다.
예전에는 그 이유를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됐다.
사람들은 돈이 없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만큼
기회를 놓치는 것도 두려워한다.
어쩌면 더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주식이 오르는 뉴스가 나온다.
코인이 급등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때 사람들은 통장 잔고를 보게 된다.
그리고 갑자기 현금이 불편해진다.
며칠 전까지는 든든했던 돈인데
갑자기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돈처럼 보인다.
그래서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원래 계획에 없던 투자를 시작한다.
충분히 알아보지 않은 상품에 들어간다.
급등한 종목을 뒤늦게 따라간다.
이유는 알 것 같으면서도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겠다.
우리나라 특유의 비교 문화 때문일까.
남들보다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심리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 돈을 벌고 있다는 소식에 생기는 질투심 때문일까.
정답은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사람들은 돈을 벌고 싶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없애고 싶어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해야 할 때인지,
하지 말아야 할 때인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움직인다.
가만히 있는 것이 불안해서 움직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반대로 행동하기도 한다.
주식 계좌가 -20%가 되어도 버틴다.
-30%가 되어도 버틴다.
그런데 현금은 못 버틴다.
손실은 버티면서 현금은 못 버틴다.
생각해 보면 꽤 이상한 일이다.
현금을 들고 있는 시간은 지루하다.
그리고 지루함은 생각보다 사람을 힘들게 만든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예전에는 현금이 아까운 돈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현금은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다.
선택할 수 있는 여유다.
갑자기 기회가 왔을 때 움직일 수 있는 힘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안전장치다.
물론 돈은 투자해야 한다.
돈이 계속 통장에만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사람들은 가끔
돈이 있어서 불안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자신이 불안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 역시 그랬던 적이 있다.
통장에 돈이 있으면 든든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돈이 생기니
이번에는 그 돈을 어떻게 굴려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사람들은 돈이 부족해서 불안한 것이 아니라
불안을 없애기 위해 돈을 움직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적금을 좋게 본다.
수익률 때문이 아니다.
돈을 묶어 두고,
쉽게 꺼내 쓰지 못하게 하고,
굳이 매일 확인하지 않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사람은 돈이 모이는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정감을 배우게 된다.
어쩌면 투자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더 좋은 종목이 아니라
가만히 있어도 불안하지 않은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